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러시아 혁명은 프랑스 혁명만큼 피로 얼룩지진 않았습니다. 1917년, 시대적으로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지배하던 러시아에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니콜라이 2세가 국민의 불만을 군대를 앞세워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프랑스 혁명의 여파가 남아 있던 터라 국민의 불만은 혁명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1917년 2월과 5월에 시중 군중이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거리를 뒤덮었습니다.

30만명이 넘는 군인이 시위 진압에 동원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원된 시위진압대 마저 시위대에 합류게 됩니다. 그리고 3월 13일에는 순양함 오로라 호의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차르는 군대까지 등돌린 뒤에야 자신에게 더 이상 권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3월 15일. ‘협의회’를 의미하는 ‘소비에트’라는 임시정부가 차르를 강제로 폐위시켰습니다. 이로써 공산주의 정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니콜라이 2세가 별다른 저항 없이 차르의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자신의 안위뿐 아니라 가족의 안위를 생각해서였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황세자 알렉세이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는 비록 대관식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니콜라이의 동생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였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2세가 차르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아들 알렉세이가 아닌 미하일에게 왕위를 양도하였으나, 하루 뒤에 미하일이 이를 거절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써 3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로마노프 왕조는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로마노프 왕가의 니콜라이 가족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언제든 차르가 부활 할 수 있음을 의미했고, 이런 상황을 두려워한 소비에트 정부는 1918년 7월 16일 니콜라이 가족을 가둔 집의 지하실로 그들을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일의 집행을 맡은 장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 친척들이 당신들을 구하려고 애썼습니다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처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조의 마지막에 관한 황당한 이모저모
19세기 영국 황실 소속 의사 헨리 핼퍼드가 50년간이나 찰스 1세의 등뼈를 식탁의 소금 그릇으로 사용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찰스 1세는 1649년에 처형되었고, 그의 유해는 윈저 성에 있는 성 조지 예배당에 묻혔습니다. 군주제가 부활한 뒤에 찰스 2세는 자신의 아버지를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에 묻으려 하였지만, 시신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1813년에 한 인부가 우연히 헨리 8세의 무덤을 파손하였고, 그곳에는 헨리 8세의 관과 나란히 찰스 1세의 관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유골을 확인한 핼퍼드는 기요틴에 잘린 찰스 1세의 등뼈 한 조각을 따로 챙겨 금을 입히고 소금 그릇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이 이 사실을 듣고 그것을 다시 관 속에 넣으라고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왕은 1920년 애완용으로 키우던 원숭이에게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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