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검투사 경기가 사라진 이유

로마인이 처음으로 생각해 낸 선진적인 문화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거나 혹은 오늘날 다시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도로와 중앙난방장치가 그런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마인은 전혀 선진적이지 않은 문화도 개발하여 즐겼습니다. 그 중 하나가 검투사들이 벌이는 결투였습니다. 로마에서 마지막 검투사 경기가 벌어진 것은 404년이었다고 합니다.

검투사 경기는 고대 로마인들이 가장 즐겨 구경하던 스포츠였다고 합니다. 피에 굶주린 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해마다 수백 명의 검투사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갔습니다. 성공한 검투사에게는 엄청난 명예와 찬사가 주어졌기 때문에 일반인 중 자칭해서 검투사가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검투사는 노예나 전쟁포로 혹은 죄수들이었고, 이들은 여러 검투사 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검투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지금의 그리스 및 불가리아에 해당하는 트라케 출신의 스파르타쿠스였다. 그는 도둑질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 검투사단에 팔렸다고 합니다.

처음 검투사 경기는 로마인을 고통과 죽음에 대해 단련시켜 보다 강한 전사로 만든다는 논리로 정당화되었지만, 점차 정신을 부패하게 만드는 경기로 인식되었습니다. 기독교 저술가였던 카르타고(지금의 튀니지) 출신의 테르툴리아누스는 과연 로마인은 ‘온몸이 찢어지고 내장이 터져 나온 채 피에 흥건하게 젖어 죽어 있는 사람을 가장 자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권리’가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경기를 범죄에 대한 징벌이라 여기는 로마인의 위선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처벌로 목숨을 빼앗아도 좋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은 검투사에게 채찍과 몽둥이로 살인을 저질러도 좋다는 권한을 주는 것과 같다.”

399년에 호노리우스 황제는 이 경기가 서서히 잦아들기를 바라면서 검투사 학교를 철폐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는 여전히 검투사 경기가 계속되였고, 404년에는 이 경기를 폐지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시도를 다짐하게 되는 사건이 드디어 발생하게 됩니다.


텔레마쿠스라는 수도사가 싸움이 벌어진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두 검투사가 싸우지 못하도록 가운데 끼어들었다가,볼거기를 망쳤다며 성난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건 후에 호노리우스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로마 바깥에서는 여전히 검투사 경기가 불법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가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콜로세움에서 사나운 맹수와 대결을 벌이는 광경은 그 뒤로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인간과 맹수가 대결하였던 마지막 경기가 벌어진 해는 523년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에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등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저술가들은 여자 검투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여자 검투사의 역할이 미미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자가 자신이 태어난 성을 부정하고 투구를 눌러쓴 모습이란 얼마나 꼴사나운가…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상대방을 칼로 찌를 때마다 내지르는 거친 숨소리를 들어보라. 투구의 무게도 이기지 못해 목이 구부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라. 그리고 천이며 철망으로 온몸을 칭칭 감아 다리가 큼지막한 나무통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꼴을 보라. 그들의 경기를 본 다음에는 실컷 웃을 수 있어 좋다.”

콜로세움에 마지막 여자 검투사가 섰던 것은 200년이다. 이 해에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여자 검투사 제도를 폐지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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