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

불과 9년밖에 되지 않는,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창작 기간 동안 700점 넘는 데생과 800점 넘는 유화를 그린 반 고흐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1890년 7월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바로 그 밀밭 혹은 그 밀밭 부근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고 말았습니다. “화가로서 나는 결코 의미 있는 존재로 남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가 반 고흐가 스스로를 평가한 말이지만, 역사는 그의 이런 성급한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과 고통속에서 황폐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런 말들을 남겼습니다.
“내 그림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일 년도 되지 않아 그는 다시 우울증에 사로잡혔고, 1889년에는 폴 고갱을 위협하려고 면도칼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1890년 5월 그의 병세는 호전되어 폴 가셰 박사의 보호 아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주하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 반 고흐는 <까마기가 나는 밀밭>이라는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작품을 7월까지 매일 한 점씩 그렸다고 합니다.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서 초록색과 황금색의 밀밭과 푸른색에서 검은색으로 차츰 어두워지는 하늘을(이는 전형적인 색조 선택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선명하게 대비시켰습니다.

이 그림에서 시선은 힘차게 약동하는 황금빛 밀밭에서 위협적으로 어두워지는 하늘로 이동합니다. 전통적으로 불화와 다툼을 상징하는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날고 있습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곳에서 그린 그림들을 통해
‘슬픔과 극도의 외로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시골 풍경에서 느낀 건강한 힘’을 담고자 한다고 썼다고 합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이 모든 요소를 모두 담고 있으며, 굳이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감동적입니다.
7월 27일 일요일, 그는 가셰 박사와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갑자기 자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림 작업을 계속할 것 같은 눈치였지만, 그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실제 풍경이던 밀밭에서 혹은 그 밀밭 근처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았고, 휘청거리며 하숙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사망하였습니다. 죽기 전에 그는 동생 태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울지 마라. 내 행동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슬픔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방아쇠를 자기 심장을 향해 당겼을 그 순간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그려진 것 중 하나라 하여 ‘절망’과 ‘좌절’의 상징이 된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하지만 적어도 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까지의 빈센트는 이보다도 더 강렬히 살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반 고흐의 엄청난 창작열은 생의 마지막을 향할수록 더욱 불타올랐다고 합니다. 생레미에서 자살하기전까지 약 15개월동안 반 고흐는 2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중 [해바라기]와 [다리와 의자와 파이프]와 같이 특히 유명한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0년 생레미에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옮긴 뒤로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 전까지 67일간 하루에 작품 하나씩을 그린 셈입니다. 1990년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스 경매에서 일본인 료에이 사이토가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화]를 7,500만 달러에 낙찰받음으로써 최고 낙찰가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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