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2번의 마지막 자동차 여행을 하였습니다. 한 번은 살아서 한 여행이었고, 한 번은 죽은 뒤에 한 여행이었습니다. 살아서 한 마지막 자동차 여행에서 그녀는 목숨을 잃었고 이 사고는 역대 그 어떤 자동차 사고보다(심지어 제임스 딘의 사고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죽은 뒤에 한 마지막 자동차 여행은 시신이 되어 장례 차량을 타고 마지막 안식처인 고향 올소프로 가는 여행이었습니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프랑스 파리에서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사망하였습니다. 그녀의 나이 36세였다고 합니다.

사고당시 차량안에는 당시 36세였던 다이애나비, 다이애나의 애인 도디 파예드, 운전기사,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인 보디가드 트레버 리스 존스가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컬브레스는 당시엔 차에 다이애나비가 타고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어떤 다른 힘”이 작용했다는 설이 있었지만, (구급차가 늦게 도착했고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파파라치들은 사진찍는데 급급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18개월간의 조사 끝에 운전사의 음주로 인한 과속이 사고 원인이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장례식은 1997년 9월 6일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그 뒤에 장례 행렬은 천천히 북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역사상 있었던 그 어떤 왕실 장례식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죽은 자의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연도에 늘어선 수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마지막 여행을 지켜보았습니다.

장례 차량이 느린 속도로 런던 시내를 빠져나갈 때 시민들이 던지는 애도의 꽃들이 영구차의 본네트와 지붕에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심지어 꽃들이 앞 유리창을 가리는 바람에 영구차 운전자는 수시로 와이퍼를 작동시켜서 꽃을 밀어내고 시야를 확보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례 행렬이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는 잠시 차를 세워야 했다고 합니다.

앞 유리창의 꽃들을 치워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운구하던 사람들은 이 꽃들을 길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평소 차량들로 붐볐으나
다이애나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텅 비워둔 도로의 한가운데를 따라서 그녀의 시신을 실은 다임러 자동차는 시속 72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렸습니다.

장례 차량이 그녀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노샘프턴셔의 올소프 영지에 도착함으로써 공식적인 마지막 여행은 끝이 나게 됩니다. 영지로 들어가는, 꽃으로 뒤덮인 출입문이 닫힌 뒤 입관식은 가까운 친지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여행의 마지막은 자동차가 아닌 도보였습니다.
웨일스 공작 왕립연대의 대원들이 깃발을 두른 그녀의 관을 들고 올소프 공원 호수 안의 작은 섬과 연결된 다리를 건넜고 거기에서 생전에 찾지 못한 평화와 한가로움을 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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