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의 최후

처음에는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에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이 도시는 1700년간 무려 22차례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마침내 1453년 5월 29일에 이 도시는 오스만투르크의 공격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도시는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재건되게 됩니다.

로마 제국의 이전 수도를 모델로 삼아 콘스탄티노플은 7개의 언덕위에 건설되었습니다. 원래 도시의 이름을 뉴로마로 정하려고 하였지만, 나중에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비잔티움이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결정되면서, 서기 330년 콘스탄티노플이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이 도시를 세웠던 메가라 사람인 비자스의 이름은 동로마 제국의 이름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비자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만든 이 도시를비잔티움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후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을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선택하였고,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이름 붙이면서 비잔티움이라는 도시 이름은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동로마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영토를 다스렸고, 나중에는 비잔틴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나 뒤이은 900년 동안 동로마 제국은 숱한 침략을 받으면서 점차 위축되게 됩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는 계속 번창합니다. 삼각형의 이 도시는 두 면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육지로 지형적으로 강력한 방어 기지를 갖추고 있어 난공불락이었기 때문입니다. 1204년에는 십자군 원정대가 바다 쪽에 세운 방벽을 뚫고 이 도시를 손에 넣었지만, 비잔틴 제국의 사람들은 1261년에 다시 수도를 탄환하고 그 뒤로도 200년이나 제국을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제국의 영토는 줄어들어,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도시만이 제국의 영토로 남고 말게 됩니다. 그 즈음 급부상 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게 됩니다. 15세기가 되면서 오스만 트루크는 실질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에워싸게 되었고, 1452년에 술탄 메메드 2세가 보스포루스 해협에 성채를 쌓았습니다. 이 성채를 이용하여 메메드는 콘스탄티노플로 들어가는 물자를 통제하였고, 마침내 이듬해 메메드는 이 도시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감행하게 됩니다. 메메드의 압도적이 화력에도 불구하고 공방은 7주간이나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1453년 5월 29일 도시를 보호하던 방벽이 뚫리고 말았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날의 전투에서 사망하였으며, 이 날은 비잔틴 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의 최후의 순간이 됩니다. 나아가 로마 제국이 마지막을 맞은 날이 됩니다. 후에 이 도시는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게 됩니다.

  • 비잔티움을 세운 메가라의 비자스는 델포이 신탁(그리스 고대 종교)에서 ‘맹인들의 도시의 반대편’에 도시를 세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비자스는 계시 속의 맹인들의 도시가 칼케돈(지금의 터키 카디코이)을 뜻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맞은편 해안에 있던 비잔티움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습니다.) 칼케돈을 세운 사람들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한쪽에 도시를 세웠지만, 반대편에 있는 반도의 전략적 이점을 간파하지 못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비자스는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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