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이 큰 소설가였습니다. 그는 ‘노인과 바다’로 1953년에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 이듬해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행동이 앞서는 삶을 살면서 죽음 직전까지도 갔었고, 자신의 사망 기사를 2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공과 갈채 속에서도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었습니다.

헤밍웨이가 맞이한 최후의 날은 1961년 7월 2일 이었습니다. 그는 새벽 2시에 미국 아이다호 케첨의 집에서 스스로 총을 물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유서는 없었다고 합니다. 총소리를 듣고 그의 4번째 아내이자 마지막 아내 메리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헤밍웨이가 총을 닦다가 오발 사고를 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헤밍웨이로서는 되풀이되는 역사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권총 자살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정신적 상처의 흔적은 그의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헤밍웨이 대표작

그가 죽은 뒤에 3권의 책이 출간되게 됩니다. 192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시절을 묘사하는 자전적 작품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축제'(1964)와 그의 마지막 소설로 가장 철저하게 무시된, 독자에게 고통을 주는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바하마의 별들'(1970), 그리고 그의 마지막 미완성 소설이자 가장 마지막에 출간된 소설인 ‘에덴의 동산’이었습니다.

1946년부터 1961년까지 간헐적으로 작업하던 ‘에덴의 동산’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고 합니다. 1920년대의 코트다쥐르를 배경으로 한 이소설은 미국 작가 데이비드 본이 아내인 캐서린, 그리고 그녀를 놓고 사랑에 빠진 위험한 심부름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지는 이 소설은 ‘진실한 헤밍웨이 소설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타임]지는 이렇게 묘사하였다.
“이 소설은 군더더기 없이 감각적으로 전개되며………. 긴장되고 세련되며 특이할 정도로 동시대의 문제를 잘 담고 있다.”

강을 오가는 배를 조종하던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는 소설을 쓰면서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썼다고 합니다. 이것은 배가 겨우 다닐수 있는 두길 정도의
수심을 뜻하는 말로 뱃사람들이 사용하던 용어였습니다.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다수의 최초 및 최후에 관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미첼이 처음으로 쓴 소설이자 마지막으로 쓴 소설이며, 그녀는 이 소설의 1장을 가장 나중에 썼고, 마지막 장을 가장 먼저 썼다고 합니다. 미첼은 자동차 사고를 당한 뒤 1949년 8월 16일에 사망하였습다.

오늘날 사람들은 스티븐슨 가문을 ‘유괴’과 ‘보물섬’등의 로버트 루이스 소설들과 연관지어 기억하곤 합니다. 그러나 당시 4대에 걸친 스트븐슨 가문의 사람들은 기술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으로 더 유명합니다. 이 분야의 업적에는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의 등대도 포함됩니다. 이 가문 출신의 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하였습다.
“나는 1900년까지 책을 쓸 것이다. 내가 인류에 기여하는 길을 찾는다면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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